[2008. 11. 21 ~ 2008. 12. 19]

 

 

■ 전 시 명 :『변연미 개인전 검은숲

■ 전시장소 : 갤러리 세줄

■ 전시기간 : 20081121() - 1219()

■ 오 프 닝 : 20081121() 오후 6

■ 관람시간 : / 9:00 ~ 7:00, / 9:00 ~ 6:00, / 10:30 ~ 6:00

■ 전시내용 :

광기로 빚어낸 검은 숲의 낮은 목소리

우리의 눈들은 플라스틱에, 그리고 오브제가 되어버린 개념들에 피곤해 있다. 도시에서 인간들이 열렬하게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것처럼 집요하고 탐욕스럽게 경향을 만들어가는 현대 예술로 인해 우리의 정신은 포화상태이다. 우리는 신선한 것을 원한다. 우리는 지금 우리들을 명상과 관조의 즐거움으로 이끌어줄 그림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완전한 자유로 꿈꾸기를 원한다. 변연미의 작품들을 마주하고 섰을 때 우리는 꿈을 꾼다.

그의 파노라마적 크기의 작품은 우리에게 부드러운 현기증을 불러일으킨다. 이 현기증은 자연의 불가사의한 언어를 상기시킨다. 작가는 숲을, 그 숲의 묵직한 수직을 그린다. 그의 나무들은 검은색에 가깝고 양각된 듯 두터운 껍질들로 둘러싸여 직립해 있다. 복잡하게 얽힌 나뭇가지들 사이로, 새들의 그림자가 갑자기 그 위치를 바꾸는 것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의 푸른 하늘이 보인다.

그의 나무들은 순수한 존재로 느껴진다. 우리보다 더 강하고 더 큰 존재들이다. 이들의 개체성은 몽드리안과는 달리 표현 되었다. 이 나무들은 전체적으로 현악기와 관악기가 서로 하모니를 이루는 오케스트라처럼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가 건네는 말들엔 19세기말의 나비파에 의해서 그려진 숲들의 환영이 묻어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덧없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그러나 나비파의 숲들은 우리에게 중세의 영향을 받은 신기하고 정교한 자연에 대한 상징을 일깨울 뿐, 변연미의 숲은 미세하게 움직이는 하늘을 배경으로 확실히 표현적이며 풍부하다. 그렇다면 그의 숲은 오히려 표현주의에 가까운 것이다. 나무들이 탄식하는 것 같아 보일 때, 우리는 비극적인 통로들을 발견하다. 그의 창작 세계를 이끄는 바로 이 신중함, 조심성, 동양적 감수성은 우리에게 다른 것을 가져다 준다. 아마도 이것은 시의 선물 같은 그의 고향, 한국 자연의 한 부분이거나 아니면 자연을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일 것이다.

한국의 전통회화는 역사가 깊고 강렬한 느낌을 준다. 변연미는 이 전통 화법을 정통으로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가늘고 율동적인 선들은 서예를 생각나게 한다. 그는 우연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난폭한 동작은 그의 작품을 혼란스러운 구성으로 몰아갈 위험이 있다. 그가 염두에 두는 것도 역시 우리가 바라는 조화와 균형을 되살리는 것이다.

만약 그가 비독창적 이었다면 그의 자연에 대한 접근은 인간에게 환경으로서의 자연만이 강조되는 현실주의 그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미지들에 완전히 개인적이고 독창적인 그의 본성을 남긴다. 그가 완벽한 구도의 확대 화면을 펼치는 사진가처럼 작업할 때에도 그는 우리에게 순수한 회화적 자연의 감동을 전달한다. 부연하면 이것은 소재에서 영혼으로 바로 전달되는 감동이라 할 것이다. 그가 사용하는 재료는 모래와 접착재가 섞인 커피 찌꺼기 등이며, 이 가루재료들로 표현한 나뭇잎, 그리고 그의 손아귀 힘이 자국으로 남아 나무껍질이 되는 특이한 표현 방법을 구사한다.

나무들, , 신비함, 은유들,,,         기억과 기원들, 왜냐하면 우리 자체가 자연이기 때문이다.

Ileana Cornea critique d'art

                                      일레아나 꼬르네아 미술비평